산피에트로 대성당(성베드로 성당)
San Pietro Basilica
성베드로대성당은 성베드로대성전·베드로대성전·바티칸대성당·바티칸대성전이라고도 한다.
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. 교황청의 산피에트로대성당 관리 성성(聖省)의 관리하에 있다.
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(聖)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,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.
15세기에 한 차례 시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구당(舊堂)의 개수계획을 재개하기 위하여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(Donato Bramante)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.
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의 중심에 대원개(大圓蓋)를 얹고,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, 대원개를 떠받칠 4개의 큰 지주와 그것들을 잇는 4쌍의 아치를 완성하였다.
브라만테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부(會堂部)를 추가한 라틴 십자식 플랜을 계획하였으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공사는 발다사레 페루치(Baldassare Peruzzi)의 손을 거쳐 안토니오 다 상갈로(Antonio da Sangallo)에게로 넘어갔다. 상갈로 역시 궁륭(穹窿)의 일부를 착수하였다가 1546년에 세상을 떴으나, 그동안 역대의 건축담당자들이 이 조영(造營)사업에 기울인 정열은 건물의 계획을 놀랍도록 변경시켰다.
154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마침내 71세의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맡겼다.
그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을 채용함으로써 브라만테의 안(案)으로 돌아가는 듯하였으나, 브라만테의 그것과는 달리 네 구석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생각해내었다.
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이 조영사업에 몸바친 그는 1564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부(基部)에 해당하는 탕부르의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.
직경 42.4m,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제(木製)의 모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포르타(Giacomo della Porta)에게 인계되었고,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(Domenico Fontana)의 손으로 넘어가 1590년 마침내 완성되었다.
건물 전체의 역동감을 그 아름답고 힘찬 곡선에 모았다가 허공에 해방시키는 듯한 이 훌륭한 원개는 그러나, 17세기 초기 신랑(身廊)의 전면(前面) 연장과 정면 가득히 펼친 칸막이와 같은 파치아타(서쪽 정면)의 증축으로 인해 그 효과가 크게 손상되었다.
헌당식(獻堂式)은 1622년에 거행되었고, 마침내 명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(Gian Lorenzo Bernini)가 나타나, 1655년에서 1667년에 걸쳐 원주회랑으로 에워싸인 훌륭한 정면 광장을 완성시켰다.
투시효과를 교묘히 이용한 이 훌륭한 광장은 가톨릭의 총본산에 어울리는 규모와 성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, 카를로 마데르나(Carlo Maderna)에 의해 정면구성으로 손상된 대성당의 모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.(네이버지식백과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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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탈리아여행]산피에트로 대성당_성베드로 대성당의 천정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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